신용회복경험담

2025.06.25 16:17

겉보기엔 ‘성공적인 삶’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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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 겉보기엔 ‘성공적인 삶’

35살, 외국계 글로벌 IT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 중인 남자입니다. 대학 졸업 후 실리콘밸리 인턴 경험까지 거치며, 남들 눈에는 “잘 나간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죠. 연봉도 평균 이상이었고, 젊은 나이에 결혼해 자녀까지 생기며 ‘이제 인생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믿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업무 성과에 따라 보너스도 쏠쏠했습니다. 명절엔 양가 부모님 용돈 챙기고, 아이 유치원비에 가족 외식까지. 부담스럽긴 해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 전개: 예기치 못한 위기, 이혼이라는 큰 전환점

하지만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고, 몇 년간의 갈등 끝에 결국 이혼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재산 분할, 위자료, 양육비 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금전적인 부담이 예상보다 훨씬 컸어요.

당시 공동명의였던 전셋집 보증금을 반으로 나누고, 위자료 명목으로 3천만 원, 그리고 카드로 결혼생활 당시 썼던 가전·가구 비용의 할부까지 떠안게 되니 채무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았고, 카드 리볼빙까지 돌리다 보니 총 채무는 약 7,8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금액을 감당하면서도 자녀의 양육비는 계속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달 60만 원의 양육비에 이자만 수십만 원씩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버는 족족 빚 갚는 데 쓰이는’ 삶이 돼버렸죠.



 



■ 위기: 카드 값 연체 문자에 눈물이 났던 날

결정적으로 마음이 무너졌던 건, 아이 유치원 생일잔치 때였습니다. 소소하게 케이크랑 선물만 챙겨 보내도 될 일인데, 카드 사용 한도가 초과됐다는 문자를 받고 멍해졌습니다. 이혼 후에도 아빠 노릇은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현실은 그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2개월가량 혼자 고민만 하다가, 결국 온라인 검색을 통해 개인회생 제도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처음엔 “이런 제도는 사업 망한 사람들만 해당되는 거 아냐?”라며 선을 그었죠. 하지만 사례들을 읽어보면서, 나처럼 일반 직장인도 신청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회사 동료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자 “망설이지 말고 알아봐. 지금 이 상태로는 해결 안 돼”라는 조언을 해줬고, 그 말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 해결: 불편하지만 나를 살린 제도

서류를 준비하고 법률 상담을 받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회사 급여 내역, 지출내역, 채무 내역을 정리하면서 제 경제 상황을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됐어요.

결국 법원에서는 월 32만 원씩 36개월 동안 변제하는 조건으로 개인회생 인가를 내주었습니다. 처음 법원에 출석했을 땐 너무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나더군요. 하지만 판사님은 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주었고, “채무자도 다시 일어설 권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개시 이후 첫 몇 달은 힘들었지만, 계획된 금액만 내면 더 이상 독촉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게 정신적으로 큰 안정을 줬습니다.



 


■ 결말: 아이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 2년 차입니다. 월급에서 자동이체로 변제금이 나가지만, 그 외엔 모든 지출을 통제하며 지냅니다. 아이와의 시간도 조금씩 늘리고 있고, 회사에선 중간관리자로의 승진도 앞두고 있어요.

물론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무너진 인생을 다시 세우는 중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습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약속을 지키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혹시 저처럼 이혼으로 인한 채무에 시달리는 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받으세요. 개인회생은 도망이 아니라 회복의 길입니다. 저도 그 길을 걷고 있고, 여러분도 분명 다시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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